“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유방외과 실습을 돌 때, 시간이 지나면서 특이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강남에서 오는 환자분들은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데 지방에서 오는 분들은 거의 말기에 가까운 상태로 내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랜 농사일로 얼굴이 그을려 거의 할머니처럼 보이는 45세 촌부가 왔습니다. 경험이 일천한 저도 말기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방과 겨드랑이에 암세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분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선생님예, 암 아니지예, 하는 순간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환자 앞에서 눈물을 흘린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2011년 12월 5일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의사, 세상을 치유하기로 도전하다, 김현철 프로젝트 말라위 책임자’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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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선생이 의대생 시절 만난 의료불평등은 시작에 불과했다. 병원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니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더 아프고 더 눈물 흘리는 사회가 보였다.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모색하기를 몇 년, (육체적·사회적으로)아픈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돈과 제도’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의대 졸업 후 경제학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다.

“제도와 돈이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등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경제를 공부해보자 싶었어요.”

지금 김현철 선생은 뉴욕에서는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박사과정 5년차로, 서울에서는 강연자 겸 펀딩담당자로, 말라위에서는 에이즈 예방사업과 모자 보건 사업, 보건소 건축 사업을 진행하는 프로젝트 말라위 책임자로 일한다. 일 년에도 몇 번씩 뉴욕과 서울, 말라위를 포함한 아프리카를 다니느라 마일리지와 장기체류용 짐 꾸리는 기술이 날로 늘어간다.

‘한국의 TED’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미니 프레젠테이션 강의인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강연한 것도 서울에서 머무르던 12월 초였다. 그는 이 강의에서 살아오면서 의사로, 경제학자로, NGO활동가로 쌓은 모든 역량을 다 쏟았다는 프로젝트 말라위를 소개했다. 내용만 보면 수많은 원조개발프로그램과 별다른 점이 없지만 프로젝트 말라위는 원조프로그램일 뿐만 아니라 정교한 경제학 모델이기도 하다.

“개발경제학이라고 하죠.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은 MIT대 경제학과 에스더 뒤플러 교수가 이런 연구를 하는데, 저개발국가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원조프로그램의 효과를 경제학으로 분석 하는 겁니다. 서구에서는 이런 식의 접근이 붐인데 한국에서는 아직이예요. 그렇다고 한국에서만 최초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죠. 저희가 던지는 질문은 좀 더 근본적인 겁니다.”

이를테면 모자보건사업에서는 임산부에게 식량과 의료를 공급할 때 아이의 건강을 적절히 유지시키는 기준을 잡는 것, 보건소 건축 사업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올 수 있는 보건소 위치를 선정하는 법, 에이즈 예방 사업에서는 에이즈 검사 비율을 높이기 위한 유인책 등을 연구하는 식이다. 선의로 기부한 재화가 최적의 효용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분하는 방법을 철저하게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틀에서 연구한다.

 

프로젝트 말라위와 컬럼비아대학 3김씨

 

“경제학이 그런 일을 하는 학문이니까요. 사업 하나하나가 이론 모델인 셈인데 그래서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아요. 도와줄 수 있는 만큼 도와준다가 아니라 디자인한 사업의 효과를 증명해야하니까요. 하나하나 완벽해야하는데 말라위에서 그게 쉽지 않은 일이죠. 현지 직원이 40명 정도 되는데 온갖 돌발 상황이 있어요, 예기치 않은 관청과의 관계, 구매 등. 그 중 한 예가 나라 전체에 기름이 떨어지는 상황이에요. 한 번 당하고 나서 기름을 쟁여두는데 그것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고.”

이런 돌발 상황에서 프로젝트 말라위를 구하는 이들이 있다. 그와 함께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는 ‘두 김씨’이다. 컬럼비아대 경제학과에서 선후배로 만난 이들이 ‘국제원조개발’이라는 목표로 의기투합한 것은 2010년. 코이카(KOICA)에서 아프리카 질병퇴치 프로그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낸 데서 일이 시작됐다. 마침 말라위에는 우리나라 기업인에 사재를 털어 지은 대양누가병원이 버티고 있었다. 그들이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장 연구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우리나라 정부, 아프리카미래재단 등 든든한 후원자들 덕분이었다고.

“일주일, 이주일을 빼서 가난한 나라에 가서 빈민들에게 수술해주던 시기를 지나서 그 나라에 병원을 짓고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어요. 그간 선배들이 쌓은 봉사활동의 토대 위에서 우리 프로젝트 말라위의 활동이 가능한 거죠.”

제 3세대 봉사활동을 시작하다

“단기의료봉사를 가는 경우도 많은데 백내장, 구개구순열 수술하는 정도만 도움 되지 나머지는 별 의미가 없어요. 고혈압약 한 달분 주고 오면 뭐해요, 오히려 현지의사로부터 외래추적관찰실패라는 결과가 될 수도 있어요. 고귀한 일이지만 거기 드는 재원을 장기적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하는 데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죠. 이보다 한 단계 넘어가면 현지에 기반을 두고 의료인을 길러내게 돼요. 단기 봉사팀이 지향해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 말라위의 활동은 이 단계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떤 활동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수치로 증명하고, 효과 있는 시스템을 봉사팀에 알리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원조가 국제사회에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는데요, 오히려 한번에 크게 도와주지 않아서 효과가 없다는 쪽과 도움 안 되는 방식으로 ‘다 말아먹어서’ 그렇다는 쪽이 있어요. 저는 중간이에요. 더 많이 돕되(Big push), 효과가 먹히는 지역에 될 만한 프로젝트를 밀어야한다는 쪽이죠. 저희들이 하는 일이 그런 지역과 그런 프로젝트를 학문적으로 증명하는 거죠.”

그는 경제학자로서 약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부모님에게서 받은 영향이다. 공대에 진학했으면 했던 아들이 의대를 택했을 때도, 경제학으로 방향을 틀 때도, 말라위에서 일하겠다고 했을 때도 “We trust you.”라고 했다는 부모님이다.

“약자를 위한 공부, 약자를 위한 학문을 하겠다는 것은 다 부모님한테 영향을 받은 거예요. 저와 같은 일을 하고 싶다는 의사, 의대생들이 결국 좌절하는 이유가 부모의 반대 때문이더군요. 자기 인생도 마음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이 일을 하겠냐는 생각도 있지만-저는 반대해도 했을 거니까요, 하하- 저희 부모님이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해요.”

10년 후 우리나라 국제개발영역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말라위를 한번쯤 다녀갔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 김현철 선생의 꿈이다. 같은 꿈을 꾸는 후배들에게 세계 수준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주고 싶다며 웃는 그에게서 세상을 치료하기 위해 세계에 도전하는 젊은 의사의 패기가 느껴졌다. ■

 

*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미국 경제학회에 의해 “경제학 사상과 지식에 명백한 기여를 했다고 간주되는 40세 미만의 미국 경제학자”에게 2년에 한 번 수여된다. 이 상은 미국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인 존 베이츠 클라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고, 노벨 경제학상과 함께 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영광으로 여겨지는 상이다.

 

김민아 기자/licomina@docdocdoc.co.kr
김형진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