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프리카 개발 스토리를 연재하고 있는 김택수입니다.

원래 계획되었던 '참여형 개발과 보건요원'에 앞서 '개발과 폭력'이라는 글을 먼저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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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폭력>
우리가 개발을 생각할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개발을 계획하는 계획가의 입장도 아니고, 개발에 돈을 대는 후원자의 입장도 아닌, 개발을 함께 해나가야 하는 현지의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국익과 인도주의 앞에 인도주의로 포장된 국익을 바탕으로 개발협력 사업을 진행하려 것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나라의 이익을 찾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 것이다. 인도주의적인 목소리를 강조하자고 있지만 국가에게 국익을 무시하라고 있는 근거가 과연 얼마나 것 인가. 안타깝지만 국가들에게 그런 성숙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보자. 현장의 개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많은 프로젝트들이 현장중심적

(field-based), 사람중심적(people-centred) 아닌 본부중심적(desk-based), 사물중심적(things-centred) 것을 있다. 여전히 Top-down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무엇인가 자꾸 '계획하고 청사진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들은 선생(teacher) 되려고 하며, 함께 배우는 학습자(co-learner)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맞다. 때론 그런 강한 드라이브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난하고 질병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허울좋은 명목아래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생각해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고 싶은 , 있는 , 주어서 기분이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인도주의적 개발' 사업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저지르는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폭력이 그들에게 제공되는 '사업'아래 간과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업이 폭력적이지 않은 것인가? 어떤 것이 그들을 위한 그들이 원하는 사업인가? 먼저 폭력적인 개발사업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그들에게 찾아가 '너희는 가난하다, 불쌍하다, 취약하다, 병들어있다'라고 규정짓고 본인들이 원하는 방식의 개입(interventions) 가하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가난하고 못난 사람으로 규정된 그들은 서구에서 말하는 '개발 프로젝트' '참여' 밖에 없다. 그들이 주체가 되는 '참여' 아닌 이미 디자인되어서 기계처럼 도구처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주 많은 데이터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무지해서 이런 '좋은 '들에 대해 기회가 없다. 이런 것들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선진문명을 접하면 그들의 삶의 질이 바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그들의 관점이다. 그들이 현지인들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는가. 현지에서 30-40년쯤 살아보니 그렇더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3-4 와보고 마치 본인이 현장을 다알고 있는 것처럼 판단하는 그런 무례한 행동을 저지르지는 않는가? 혹은 현장에는 개발관광(development tour) 와보고 현장을 안다고 판단하진 않는가?, 현지 언어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서 마치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진 않는가, 이런 것이 폭력이 아니면 무엇이 폭력일까? 

그렇다면 이런 폭력은 어떻게 막을 있을까? 결국 주도권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현지주민들에 대한 '무시와 하대'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없는 전제조건이 되어버린다. 그들의 삶의 지혜, 경험은 '아프리카 검둥이의 무지한 헛소리'라고까지 생각해버리는 못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폭력의 중심에 있는 '무시함' 대한 극복이 이뤄진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것이다. , 이제 그럼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L.I.S.T.E.N 듣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취약한 사람들, 계층들을 돌보는 것이다. 그들의 방식대로 (그것이 부패와 부정 속에 갇혀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할지라도)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안에서 문제가 생길 것이다. 시행착오도 생길 것이다. 부정과 부패에 찌들은 현지 공무원들의 모습도 보일 것이다. 기존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나? 여전히 존재했던 문제들이다. 그들이 고쳐나가도록 해야한다. 그들의 힘으로... 우린 다만 그것을 돕는 facilitator임을 잊으면 안된다. 

개발을 이야기할 ,각자가 생각하는 '개발의 정의'에서부터 우리의 논의는 펼쳐질 있다고 본다. 도로를 놓고 건물이 세워지는 앞의 인프라가 구축되는 형식의 개발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어린이의 인권, 상처받은 여성의 존엄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혹은 전혀 다른 모습의 (유형과 무형의) 개발을 이야기 수도 있다. 각자의 개발 스펙트럼에 따라 개발에 대한 담론은 때론 답이 없을수도 있고 때론 전혀 다른 생각의 토론장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개발 프로젝트는 누가 뭐래도 현지에 있는 주민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후원국가도 아니고, 돈을 사용하는 국제기구나 NGO들도, 나라 정부의 공무원들도 아닌 바로 현지 주민들이라는 것이다. 자꾸 욕심이 들어가고 ' ' 같아보이는 프로젝트들이 생겨날 현지에 대한 '폭력'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잘모르면 침묵하고 있자. 그리고 배우자.